박기출 회장, 충남지역 청소년에 성공스토리 들려줘
"너무 늦게 꿈꾸지 말고 좀 더 일찍 꾸고 실현하라"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박기출(59)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장이 26일 오후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돈암서원에서 계룡시, 논산시, 공주시 등 3개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 회장은 문화재청이 "2015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향교, 서원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마련한 인문학 강좌의 강사로 초빙됐다.
김선의 돈암서원 장의는 "지역 청소년들이 인문학 강좌를 통해 세계에 진출하는 큰 꿈을 세울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해외에서 성공한 한상(韓商)으로 꼽히는 박 회장의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가 청소년들에게 많은 본보기가 될 것 같아 초청 강사로 섭외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꿈을 잃은 청년이 있는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나의 청소년기 역시 꿈도 없이 방황하는 날이었고,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 나이는 45세입니다. 너무 늦게 꿈에 도전했지만 여러분은 전 세계의 인재들과 당당히 겨루며 꿈을 좀 더 일찍 꾸고 실현하길 바랍니다."
박 회장은 이어 자신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서 겪은 실패와 성공스토리를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그는 울산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쌍용건설에 취직했다. 국내 파트에서 3년간 일하다가 말레이시아 주재원을 거쳐 1990년부터 8년간 싱가포르에서 일했다.
외환위기 당시 외국계 회사에 임원으로 스카우트돼 2년간 일한 그는 2000년 "내 사업을 해보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컴퓨터 부품 제조업체를 인수했다. 그러나 기술 경쟁력을 지니지 못해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리는 쓴맛을 본 뒤 말레이시아로 도피성 외유를 떠났다.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자동차용 시트 회사의 구매 담당자로부터 한국산 스프링을 조달해 달라는 제의를 받고, 무조건 "예스"라고 답한 뒤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인천, 시화, 울산, 대불공단 등지를 이 잡듯 뒤지고 다닌 끝에 스프링을 개당 1달러에 1만 개를 납품하며 20%의 이익금을 챙겼다.
첫 거래에 성공해 자신감을 얻은 그는 한 시트 유통업체를 찾아가 5개월의 시한을 제시하며 시트 납품계약을 따냈다. 자본주를 끌어들여 시트공장을 세우거나 기존 공장으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호기를 부렸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알고 지내던 자본주와 일본인, 미국인 공장을 찾아다니며 읍소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던 것.
시트 납품 계약을 지킬 방안이 없어 골머리를 싸매던 그는 싱가포르행 비행기 안에서 말레이시아의 한 은행이 낸 기업금융 광고를 접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은행을 방문해 사업 계획을 브리핑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2001년 첫 번째 회사 C.N.A 매뉴팩처링이 탄생했다.
이어 두 번째 회사 PNA 테크놀로지를 세웠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박 회장에게 "불가능이 없는 미스터 박"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현재 그는 말레이시아와 러시아에서 자동차 내장재 제조공장을 설립해 연간 매출 1억 달러를 올리는 'PG홀딩스그룹'의 수장이 됐다. 월드옥타 싱가포르 지회장을 지낸 뒤 16대 집행부에서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10월 월드옥타 회장에 당선됐다.
이날 박 회장의 특강이 끝나자 학생들은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회장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질문을 하며 관심을 쏟았다.
돈암서원은 예학의 종장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년)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자 그의 제자들이 1634년(인조 12년)에 창건했다. 1660년(현종 원년)에 사액을 받은 기호유학의 대표 서원이다.